티스토리 뷰
목차

서브 커플이 메인 커플보다 더 잘 보이는 드라마, 혹시 이게 정상일까요? 저는 이번생은 처음이라를 보면서 처음으로 "저 두 사람 때문에 다음 화를 기다렸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솜과 박병은이 만들어 낸 우대리-마대표 라인은 제가 최근 몇 년 사이 봐온 오피스 로맨스 중 가장 현실감 있게 와 닿았고, 그래서 더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서브 커플이 더 눈에 들어오는 이유
드라마를 볼 때 메인 커플보다 서브 커플에 먼저 감정이 이입되는 현상, 이걸 두고 서사 포화도(narrative saturation)라는 말로 설명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서사 포화도란 주인공 커플에게 너무 많은 갈등과 설명이 몰리다 보니 시청자가 오히려 피로를 느끼는 상태를 뜻합니다. 반면 서브 커플은 분량이 적은 만큼 한 장면 한 장면이 압축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처음엔 마대표 캐릭터가 좀 작위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는 먹었는데 연애 경험치는 스무 살 같고, 철은 없는데 사업 감각은 예리한 그 조합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 의심스러웠거든요. 그런데 박병은 배우가 울컥하는 장면에서 눈가가 붉어지며 버티는 연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렇게 가녀려 보이는 순간이 있으면 그 허세도 납득이 되더라고요.
반대로 우대리는 처음부터 "이 사람이 주인공이었어야 했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이솜 배우 특유의 큰 키와 절제된 표정, 그리고 웃는 순간 갑자기 어려지는 얼굴이 캐릭터와 너무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오피스룩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배우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오피스 로맨스가 현실을 건드리는 방식
우대리의 회식 장면이 방영되고 나서 "너무 공감된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저도 그 반응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듣기 싫은 소리가 나와도 못 들은 척, 분위기에 맞춰 술을 기울여야 하는 그 장면들이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실제 직장인의 감정 노동을 그대로 가져온 느낌이었습니다.
직장 내 감정 노동(emotional labor)이란 자신의 실제 감정과 다르게 표현하도록 요구받는 상황을 말합니다. 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쉴드가 처음 체계화한 개념으로(출처: Emotional Labor, Wikipedia), 서비스직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조직 문화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우대리가 박 대리의 섹드립을 흘려들으며 웃어야 했던 장면은 바로 이 감정 노동의 전형입니다.
마대표 캐릭터를 두고 "저런 대표가 실제로 있을까"라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반은 동의하고 반은 생각이 다릅니다. 직원보다 더 발로 뛰고, 투자자 앞에서도 직원을 두둔하는 대표는 제 경험상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점에서 마대표는 분명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 판타지가 시청자에게 필요한 이유도 있다고 봅니다. 현실이 팍팍할수록 드라마 안에서만큼은 저런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반영된 캐릭터니까요.
직장 내 권력 역학이 로맨스에 개입하는 방식
우대리가 마대표의 접근을 계속 밀어내는 방식도 단순한 밀당이 아니라 직장 내 권력 비대칭(power asymmetry), 즉 직급과 고용 관계에서 오는 불평등한 힘의 구도를 의식한 자기 보호로 읽힙니다. 여기서 권력 비대칭이란 조직 내에서 한쪽이 다른 쪽의 고용·평가·처우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를 가리킵니다. 드라마가 이 부분을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우대리의 행동으로 계속 보여주는 방식이 꽤 세련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내 직장인 설문에 따르면 직장 내 연애 경험자 중 상당수가 "업무 관계를 이유로 관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우대리의 조심스러움이 단지 성격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라마가 설득력 있게 담아낸 부분입니다.
- 감정 노동: 실제 감정과 다르게 표현해야 하는 직장 내 압박을 우대리가 현실적으로 보여줌
- 권력 비대칭: 대표와 직원이라는 구조가 로맨스의 심리적 장벽으로 작동하는 설정
- 판타지와 현실의 혼합: 마대표는 비현실적이지만, 그 비현실이 시청자가 원하는 바람을 담음
이 커플이 실제로 남기는 것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제가 계속 곱씹었던 장면은 우대리가 박 대리에게 직접 찾아가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피하거나 뒤에서 욕하는 대신 얼굴 보고 말하는 방식, 마대표가 "항상 도망치거나 싸우기만 했지 세상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다"고 했던 말을 스스로 실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비슷한 상황에 처해봤을 때 저는 그렇게 못 했거든요.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 즉 인물이 이야기를 거치며 변화하는 내면의 궤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대리의 변화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뚜렷하게 그려진 축에 속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내가 시작하면 버텨준다"는 말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게 로맨스의 외형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세상과 화해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이런 설정이 다소 이상화됐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현실에서 직장 상사나 대표가 저런 식으로 행동하면 오히려 불편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하지만 드라마가 완전한 현실이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저는 이 커플이 남긴 것은 결국 "지금 내가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이었다고 봅니다. 그 질문이 시청자에게 한 번이라도 생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만든 캐릭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솜 박병은 실제 나이 차이가 있나요?
A. 두 배우 사이에는 실제로 나이 차이가 있으며, 드라마 속 캐릭터 설정에도 마대표가 우대리보다 연상인 구도가 반영돼 있습니다. 나이 차가 있음에도 오히려 우대리 쪽이 사회경험과 처세 면에서 한 수 위라는 설정이 두 배우의 케미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Q.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어디서 볼 수 있어요?
A. 방영 당시 공개된 영상 일부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전편은 국내 주요 OTT 플랫폼을 통해 시청 가능합니다. 정확한 서비스 제공 여부는 플랫폼별로 달라질 수 있으니 직접 검색해 확인하시는 게 빠릅니다.
Q.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소개팅 앱은 실제로 있는 건가요?
A. 드라마 속 설정입니다. 다만 외모와 경제력을 기준으로 등급을 나눠 매칭하는 방식은 실제 소개팅 앱 시장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드라마가 이 구조를 다소 냉소적으로 그리면서 "사랑은 알고리즘으로 설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인상적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결론
서브 커플이 메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밀도의 문제라는 걸,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이솜과 박병은이 만들어 낸 우대리-마대표 라인은 오피스 로맨스라는 장르 안에서 감정 노동, 권력 비대칭, 그리고 한 사람이 스스로 세상과 마주하는 과정까지 담아냈습니다. 제가 봐온 드라마 중에 직장 생활의 불편함을 이 정도로 구체적으로, 그러면서도 로맨스의 온도를 잃지 않고 그려낸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 커플이 판타지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고, 현실 그 자체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 두 반응이 모두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쪽에서 봐도 뭔가 하나는 건드리는 드라마였고, 그게 좋은 드라마의 조건이라고 봅니다. 아직 안 보신 분이라면 메인 커플보다 이 두 사람을 먼저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