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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이 날 줄은 몰랐습니다. 키스신 하나 없고, 억지 신파도 없는데 두 주연의 감정이 화면 밖으로 넘쳐흘렀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버려진 아이가 어떻게 자기 이름을 되찾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처럼 드라마 결말에 아쉬움이 남는 분들, 그 감정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글이 조금은 도움이 될 겁니다.
9살 아이의 트라우마,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제 어릴 때 기억이 자꾸 끼어들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 부모님이 크게 싸우시던 장면이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저한테 뭐라고 하신 것도 아니었고, 결국 화해하시고 지금은 화목하게 지내시는데도 그 순간만큼은 지워지지가 않아요. 정작 행복했던 기억은 흐릿한데, 무서웠던 순간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게 참 얄궂습니다.
이게 바로 트라우마 기억 고착(traumatic memory consolidation) 현상입니다. 여기서 트라우마 기억 고착이란, 강한 감정적 충격을 동반한 사건이 일반적인 기억보다 훨씬 강하게 뇌에 저장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무서운 순간일수록 뇌가 더 꽉 붙잡아 두는 겁니다. 출처: 미국정신의학회(APA)에 따르면, 이런 기억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특정 자극에 의해 불현듯 활성화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영실이는 제 경우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저는 부모님 곁에 있었고, 결국 다 같이 살았습니다. 영실이는 아홉 살에 그냥 버려졌습니다. 보호자가 사라진 자리에 아이 혼자 남겨진 것입니다. 제가 그 어린 아이의 공포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고 느낀 건 그 지점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시나리오를 쓰고, 자기 이름 대신 필명으로라도 세상에 나옵니다. 너무 기특하고, 동시에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 트라우마 기억 고착: 충격적 사건일수록 뇌에 더 선명하게 저장됨
- 어린 시절 버려진 경험은 애착 장애(attachment disorder)로 이어질 수 있음 — 여기서 애착 장애란 안정적인 양육자 없이 성장한 아이가 타인과 건강한 유대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뜻함
- 영실이의 말이 많은 것, 침묵을 두려워하는 것 모두 이 맥락에서 읽힘
영실이가 황동만을 살렸다, 그 방식이 특별했던 이유
드라마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단어를 하나만 고르라면 저는 '공명(resonance)'을 고르겠습니다. 여기서 공명이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같은 주파수로 진동하면서 상대방의 약한 부분을 증폭시켜 주는 현상을 말합니다. 흔히 물리학 개념이지만,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황동만이 자기 무가치함의 끝에서 허우적댈 때, 영실이는 거기에 달려와 다독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시나리오를 읽고 울었습니다.
보통 드라마에서는 누군가 무너질 때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말로 받아줍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달랐습니다. 영실이는 말 대신 행동으로 황동만의 글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게 키스신 하나 없어도 두 사람의 사랑이 실감 나게 전달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속 감정 워치 장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정 상태를 수치로 측정하는 웨어러블 기기라는 설정인데, 정작 중요한 감정은 '알 수 없음'으로 표시됩니다. 코피가 나는 분노,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 절망감. 이런 복합 감정을 언어로 정의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알 수 없음'이라는 표기가 오히려 영실이라는 인물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출처: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Complex PTSD) 상태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하는 능력 자체가 저하된다고 합니다. 영실이의 '알 수 없음'이 그냥 극적 장치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황동만 신인감독상, 12부작의 아쉬움과 여운 사이에서
마지막화를 보면서 솔직히 좀 허탈했습니다. 황동만이 제48회 한국 영화상 신인 감독상을 받는 장면에서 드라마가 마무리되는데, 그 직전까지 쌓아온 이야기에 비해 너무 빠르게 닫히는 느낌이었습니다. 12부작이라는 분량 자체가 짧았던 것 같습니다. 각 캐릭터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갈 여지가 충분히 있었는데, 마지막화에서 그 여백을 다 접어버린 기분이랄까요.
황동만이 수상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 영실이가 필명 대신 본명으로 세상에 나오는 날이 오는지, 그 이후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아마 이 아쉬움이 여운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할 겁니다. 다 보여주지 않아서 더 생각나는 드라마가 됐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버린 엄마 이야기는 끝까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제가 몇 번을 돌려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었다 해도 아홉 살 아이를 혼자 두는 선택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드라마는 그 엄마가 자신을 나쁜 엄마라고 후회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로 끝을 맺습니다. 자식을 버린 죄책감을 혼자 짊어질 짐으로 여기고, 끝까지 나쁜 엄마로 남으려 한다는 해석이 제 나름의 결론이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완전히 납득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캐릭터는 이해 불가로 남겨두는 것도 작가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드라마틱 아이러니(dramatic irony)라는 서사 기법이 이 드라마 곳곳에 쓰였습니다. 여기서 드라마틱 아이러니란 시청자는 알고 있지만 등장인물은 모르는 정보 격차를 이용해 긴장감과 감정을 만드는 기법입니다. 황동만이 자기가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지 모른 채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장면들이 이 기법으로 가장 잘 작동했습니다.
결론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제일 오래 붙잡고 있었던 문장은 황동만이 수상 소감에서 한 말, "그 누구에게도 비수가 되지 않길"이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만든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거든요.
12부작이 짧다고 느껴지신다면 그건 드라마가 그만큼 더 보고 싶었다는 뜻입니다. 아쉬움이 남는 분들께는 영실이와 황동만이 나눈 대사들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빠르게 지나간 장면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