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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수영이 이렇게 연기를 잘할 줄 몰랐습니다. 아이돌 출신 배우라고 하면 으레 '아직 어색하다'는 평이 따라붙기 마련인데, 드라마 <남남>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가정폭력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억지로 눈물을 짜내지 않고, 보는 내내 웃다가 가끔 뒷목이 서늘해지는 묘한 균형감이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모녀케미가 완성한 드라마의 온도
제가 고등학교 때를 돌이켜보면 세상에서 제일 큰 고민이 친구들이랑 어떻게 잘 지내느냐였습니다. 아침에 늦잠 자서 지각할까 봐 뛰어가고, 쉬는 시간엔 매점에서 산 과자를 나눠 먹고, 하교 후엔 학원 가는 길에 떡볶이 한 입 하는 게 하루의 하이라이트였죠. 그 나이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다 키워서 친구처럼 지낸다는 설정이 처음엔 그냥 드라마적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남남>의 모녀 은미(전혜진)와 진희(수영)를 보다 보면 그게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물리치료사 은미는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찾아온 환자의 몸에서 싱크대에 부딪혔다고 설명하기엔 석연치 않은 상처들을 발견합니다. 여기서 이 상처들은 단순한 멍이 아니라 반복적 외상(Repetitive Trauma)의 흔적으로 볼 수 있는데, 반복적 외상이란 같은 부위에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물리적 충격이 남기는 패턴화된 손상을 의미합니다. 임상 경험이 있는 의료인이라면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신호죠.
은미는 섣불리 신고하거나 캐묻는 대신, 경찰인 딸 진희에게 조심스럽게 상황을 넘깁니다. 그리고 진희는 절차대로 해당 가정을 방문해 숨겨진 피해자, 어린아이를 발견합니다. 아동학대 현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이 극심한 상태였는데, 분리불안이란 주 양육자와 떨어지는 상황에서 아이가 극도의 공포 반응을 보이는 심리적 증상입니다. 학대 환경에서 역설적으로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이 장면을 더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수영과 전혜진, 두 배우가 드라마를 살린 방식
일반적으로 아이돌 출신 배우는 감정 표현이 과하거나 반대로 너무 절제돼서 어색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봤을 때, 수영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습니다. 가해자 아들에게 전화로 "손끝 한 번만 더 대봐, 대한민국에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해줄 테니까" 하고 쐐기를 박는 장면에서는 진짜 경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파출소장 재원(전재준)과 티키타카 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졌습니다. 아이돌이라기보다 배우로 보였던 드라마라는 게 제 솔직한 감상입니다.
전혜진의 은미는 더 입체적입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인데,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납니다. 그 과거가 있기에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를 보는 눈이 남다를 수밖에 없고, 사건이 마무리된 뒤에도 홀로 무게를 지고 있는 장면이 묵직하게 와닿았습니다.
- 전혜진(은미): 물리치료사이자 파란만장한 과거를 가진 엄마, 날카로운 눈썰미와 거침없는 말발이 매력
- 수영(진희): 경찰이지만 동네 파출소로 좌천된 딸, 원칙주의처럼 보이지만 현장에서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임
- 전재준(재원): 파출소장, 원칙과 뚝심이 진희와 닮아 있어 티키타카 케미가 자연스럽게 쌓임
가정폭력 소재를 다루는 방식, 무겁지 않아서 더 무서웠다
가정폭력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고 하면 보통 두 가지 방향입니다. 내내 무겁고 직접적으로 고발하든가, 아니면 소재만 빌려다 쓰고 실제론 가볍게 흘려보내든가. <남남>은 그 어느 쪽도 아니어서 처음엔 좀 당황했습니다. 중간중간 은미와 진희의 대사 치는 장면이 웃기고, 재원과의 로맨스 복선도 설레는데, 그 와중에 아이가 극심한 분리불안증을 보이는 장면이 불쑥 끼어들어 웃음을 멈추게 만듭니다.
이 균형이 생각보다 영리합니다. 가정폭력 피해는 극적인 한 장면으로 드러나는 경우보다, 일상 속에서 쌓이고 숨겨지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출처: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 중 상당수가 수년간 피해를 경험하면서도 신고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드라마에서 노인 환자가 상처를 감추고 "싱크대에 부딪혔다"고 말하는 장면이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경찰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직접 피해자 집까지 찾아가 파헤치는 장면은, 실제 아동학대 대응 절차와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아동학대 신고 접수 후의 공식 대응 체계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의 협력을 기본으로 하며, 개별 경찰관이 단독으로 현장에 뛰어드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출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드라마적 허용이라고 받아들이면 그만이지만, 그 장면 덕분에 오히려 현실에서는 이런 사건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스토킹 범죄와 연결되는 후반부, 장르의 확장
3~4화에서 드라마는 가정폭력에 이어 스토킹 범죄(Stalking Crime)로 이야기를 확장합니다. 스토킹 범죄란 특정 대상을 지속적으로 따라다니거나 접촉을 시도해 피해자에게 공포감을 유발하는 행위로, 2021년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국내에서도 공식적인 범죄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은미를 따라다니던 남성이 사망한 피해자와 연결될 수 있다는 의구심이 쌓이면서 진희의 추격전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진희가 방범등 고장이라는 사소한 디테일을 기억하고 있다가 동선을 연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디테일이 쌓이는 드라마는 나중에 반드시 회수됩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남성 진홍이 은미와 어떤 접점을 가지고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진희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할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남남 너무 무거운 드라마 아닌가요?
A. 일반적으로 사회적 소재를 다루면 무거울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제가 직접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정폭력·스토킹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중간중간 웃음 포인트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가족이 밥 먹으면서 함께 보기에 오히려 적합한 드라마입니다.
Q. 수영 연기력이 진짜 괜찮나요? 아이돌 출신이라 걱정돼서요.
A. 저도 처음엔 같은 걱정을 했는데, 보고 나서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이돌이라기보다 배우로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몰입감이 있고, 특히 전재준과의 티키타카 장면에서 코미디 연기도 능숙하게 소화합니다.
Q. 로맨스 요소도 있나요?
A. 3~4화 기준으로 본격적인 로맨스보다는 복선이 조금씩 깔리는 단계입니다. 진희와 파출소장 재원이 원칙과 고집이라는 면에서 닮아 있어 앞으로 쌓일 케미가 기대되는 구조입니다.
결론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엄마랑 친구처럼 지내는 편인데, 은미와 진희를 보니 여행을 같이 한번 가보자고 말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번 여행 가면 싸우고 끝났는데,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보고 싶다는 이유 없는 의욕이 생긴 게 신기했습니다. 좋은 드라마란 결국 이런 거 아닐까 싶습니다. 스토리 자체도 좋지만, 보고 나서 내 주변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것.
<남남>은 완벽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경찰이 현실에서 저렇게 움직이기는 어렵고, 일부 전개는 드라마적 허용이라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수영과 전혜진의 모녀케미와 사회적 메시지를 이렇게 가볍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버무린 드라마는 최근에 흔치 않았습니다. 밥 먹으면서 가족과 다 같이 보기에 딱 좋은 드라마라는 게 제 최종 결론입니다.